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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음악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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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칼럼>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장우형이사)

관리자l2014-09-15l 조회수 2276


312장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If Thou but stuffer God to guide Thee]

Georg Neumark 작사(1621-1681)

    

작사 작곡의 배경

    

이 찬송가를 작사 작곡한 게오르크 노이마르크는 중부 독일 랑엔살차(Langensalza)에서 태어났습니다. 노이마르크는 많은 역경과 고통을 믿음으로 인내하여 승리한 사람으로, 그 대부분의 찬송시를 고난의 시기에 썼습니다. 이 찬송가는 그가 스무살이 되던 1641년에 지은 것입니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노이마르크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쾨닉스베르크로 떠났습니다. 일련의 상인들의 틈에 끼던 중, 강도를 만나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기도서 한권과 옷 속에 넣고 꿰매버린 동전 몇 개뿐이었습니다. 대학에 진학하려던 그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고, 직장을 구하려고 애썼으나 30년 전쟁의 당시로서는 허사였습니다. 그는 여러 도시를 전전하며 걸식으로 연명하였습니다. 추운 12월이 되서 그는 키일(Kiel)이라는 도시에 도착했습니다. 그 곳에서 목사로 일하고 있던 옛 친구를 만나게 되었고 그 친구의 주선으로 스테판 헤닝 판사의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방황과 걸식이 끝난 기쁨은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그의 길을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해 그는 당장 붓을 들어 이 곡을 작사 작곡하였다고 합니다. 노이마르크는 1643년 쾨닉스베르크로 가서 그가 원했던 법학을 공부 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총 34편의 찬송시를 지었는데 그 중에서 이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Wer nur den lieben Gott laesst walten 독일찬송가 298장)이 가장 유명합니다. 바하는 이 곡조로 그의 칸타타 93번을 작곡하였고 멘델스존도 칸타타 8번 ‘사도 바울’에 이 곡을 사용했습니다.

    

음악적 해석

우리는 바로크 시대의 많은 곡들이 그 내용이 슬프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장조가 아닌 단조를 사용하는 것에 의문을 갖습니다. 바하의 경우, 같은 선율을 한 번은 아주 슬픈 내용의 가사로 마태수난곡에서 사용했고(Haupt voll Blut)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의 경우에는 밝은 내용의 코랄을 (예: 제 5 코랄 ‘Wie soll ich dich empfangen’) 같은 선율과 화음으로 작곡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바로크에서는 어두운 단조의 곡을 뜻밖에도 밝은 내용의 코랄에 사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그 해답은 16세기의 이탈리아의 시인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 1304-1374)와 그의 시에 음악을 붙이는 것에 열광적이었던 작곡가들이 일으킨 페트라르카운동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시인 페트라르카는 우리나라로 말하면 김소월 같은 존재로 사랑이라는 주제로 많은 시를 남긴 시인입니다. 16세기에 와서야, 14세기에 태어난 시인 페트라르카가 세인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그가 죽은지 100년이나 지나서 태어난 당시의 시인이자 정치가, 그리고 추기경이었던 피에트로 벰보(1470-1547)의 역할이 막대합니다. 벰보는 1501년 페트라르카의 시집 ‘칸초니에레(Canzoniere)를 편집하면서 그가 시에서 추구하였던 두 가지 반대되는 특성 - 유쾌함(piacevolezza)와 근엄함(gravita)을 지적해 내었습니다. 유쾌함의 범주에는 우아함, 감미로움, 매력적임, 부드러움, 쾌활함 그리고 위트가 포함되는 반면, 근엄함의 범주에는 소박함, 위엄, 장중, 장려함, 그리고 웅장함이 포함됩니다. 그 후 작곡가들(팔레스트리나, 랏소, 마렌치오, 페리 몬테베르디 하슬러, 하이든, 슈베르트, 리스트, 그리고 심지어는 쇤베르크까지)은 페트라르카의 시에서 발견되는 이러한 음향적 가치에 민감해 되고, 이러한 풍으로 작곡을 하게 됩니다. 이 페트라르카 운동이 장단조의 성격을 결국 결정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단조는 슬픈 감정을 표시하기 보다는 위엄과 웅장함을 대표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예수님의 탄생이나 고난의 극복 등은 장조로 작곡되지 않고 좀 더 품위 있는  단조로 작곡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장단조의 쓰임새는 유럽 대부분의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주었지만, 헨델처럼 섬나라 영국에서 대부분의 작품을 완성했던 작곡가들에게는 생소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영국의 음악은 3도와 6도 음정을 선호하고 장조에는 유쾌함 보다는 화려함을, 단조에는 근엄함보다는 비통함을 강조했습니다. 결국 같은 해에 태어난 바흐와 헨델, 두 거장의 음악들은 이러한 장단조의 서로 다른 분위기로 인해 완전히 성격이 갈리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영국의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건너가고, 미국의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은 한국은 바흐보다는 헨델을 선호 할 수밖에 없었다고도 볼 수 있지요.

[해설: 한국교회음악협회 연구분과위원장 장우형박사, 서울장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