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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음악의 올바른 활용에 관한 제언(이문승교수)

관리자l2005-03-21l 조회수 6278


본 글은 한국교회음악협회 뉴스레터 2004년 3월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예배음악의 올바른 활용에 관한 제언

                                              이문승(서울신학대학교 교회음악과 교수)

  21세기를 향한 한국교회의 교회음악은 어떤 형태와 내용이 바람직할까? 우선적으로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시면서도 한국교회의 실정에 맞는 음악이어야 할 것이다. 어떤 음악을 기뻐 받으시고 어떤 음악이 실용적일까? 여러 측면에서 설명되고 논의할 수 있겠지만 몇가지로 요약해 보기로 한다. 교회음악은 아름다우면서도(예술성) 의미가 있고(신학성), 부르기 편하고(회중성), 흥미로운(실용성)것이라는 측면에서 설명한다.
우선 예술성 문제로부터 말하여 보자! 교회음악은 예술적 아름다움이 필수적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름다운 교회음악을 더 좋아하시며, 음악은 곧 노래하는 사람의 삶의 형태 및 질로 이어져서 그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교인들은 음악을 듣고 부름으로 인하여 직접, 간접적으로 교육의 기회를 갖게 된다. 음악 행위의 준비 단계가 다소 복잡하고 어려워도 예술성이 있는 교회음악을 목표로 해야만 인류사회 및 교회가 발전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질적으로 성장하는 교회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음악은 영성과 지성을 잘 살릴 수 있는 조화로운 것이로되  예술적이어야 한다. 그러기위하여 세속음악적 요소와는 어느 정도 구별되어야 한다. 만약 양적 성장 논리를 지나치게 앞세워 세속성이 짙은 매체와 음악기법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면 양적 성장 이후 새로운 질적 교육을 위한 노력 및 중간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에 대한 댓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지금도 음악 양식이나 연주 매체의 차이, 그리고 대중음악적 환경과의 마찰 때문에 마음으로 갈등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삶의 스타일이나 생각의 질이 다르기 때문이리라. 복음성가나 대중음악적 요소가 가미된 음악행위가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복음성가가 어느 정도 효과적으로 활용되는 것은 필요하지만, 찬양 많이 하면 교회가 성장한다라는 미분화된 말에 따라 복음성가를 무분별하게 남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떻게 살고  어떤 음악을 부르느냐도 중요하다.

  둘째로, 교회음악은 기독교적 특색과  효율성이 강조된 실용음악이어야 하되 가사와 음악이 신학적, 음악적으로 검증되고 선별된 것이어야 한다. 무분별한 음악과 가사는 회중들을 혼란스럽게하여 잘못 인도하게 한다.
가사의 검토는 쉽게 판단할 수 있다. 우선 작사자나 번역자가 잘해야 하겠지만 곡의 선택자나 목회자가 곡을 선곡할 때 반드시 가사를 미리 읽어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 표현법 미숙, 다른 종교적 용어 사용, 추상적 표현, 그리고 깊은 뜻 없이 의례적으로 반복되는 가사, 내용의 단순성 등은 수정해야 한다. 쉽고도 효율적이며 의미가 있는 가사가 필요하다. 전달을 위하여 가사와 음악의 악센트를 맞추는 일도 중요하다.
음악 양식 역시 선별이 필요하다. 주위에서 자주 불리고 있는 C.C.M들을 살펴보면 음악적으로 문제점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에 대한 구별은 약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지만 객관적으로 쉽게 판별할 수 있는 점도 많다.  예를 들면 음역이 너무 높거나 낮은 것, 리듬의 변화가 지나치게 많거나 계속된 당김음, 곡의 길이가 지나치게 긴 곡, 선율의 진행이 부자연스럽거나 어려운 것, 그리고 음량을 지나치게 크게 하고, 드럼세트와 심벌즈를 무분별하게 비음악적으로 두들기는 것과 같은, 음향만 무성하게 울리는 꽹가리 같은 연주이다. 이러한 음악은 교인들을 당황스럽고 혼란에 빠지게 한다.

  셋째는, 21세기의 교회음악에 있어서 말씀과 음악의 아름다운 조화가 더 강조되어야 하되, 회중들은 듣기만하는 교회음악-성가대만이 연주하는 상아탑적인 교회음악의 형상-을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지나친 설교 중심의 예배도 안 된다. 여기서 말하는 교회음악은 회중 찬송뿐만 아니라 복음성가, 성가대의 찬양, 독창자의 솔로까지 모두 포함된다. 교회음악은 회중과 일체감을 위하여 반드시 회중과 더불어 이루어져야 하고  회중의 이해 범주를 떠나지 않은 것으로 하되 품위를 잃지 않은 아름다운 것으로 가꾸어져야 한다. 위에서 지적했던 몇 가지 음악적 문제점들이 회중성을 위한 중요한 조건들이 된다. 교회음악은 성가대원 자신과 회중의 관심을 끌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음악지도자는 많은 아이디어를 필요로 하며 좋은 음악의 선곡 및 연주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 회중을 향하고 약간은 긴장감 있으며 밝고 힘찬 음악을 주로 하되 음악적 효과를 위하여 느리면서도 분위기 있는 음악과 절충해야 한다. 한 가지 종류의 음악은 인간을 목적지향적으로 만든다. 그 결과도 역시 불완전한 인간을 만든다.
  그러므로 교회음악은 대중적 성향을 강조하기보다 당연히 교회의 전통성이 존중된 회중성을 강조해야 한다. 회중성은 교회다운 교회음악의 면모이다. 기법적으로 대중음악적 요소와 완전히 분리하여 생각할 수는 없다하더라도 교회의 특징에 대한 고려가 음악에 적용될 때 가능하다. 회중은 교회음악 행위에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참여해야 하므로 교회음악 지도자는 회중의 참여를 늘리도록 교회음악 행위를 기획해야 한다. 그러기위하여 음악 양식 뿐 아니라 연주 양식 및 교육까지도 회중성에 대한 고려를 해야 한다.

넷째는, 교회음악은 유행성이나 시대의 흐름에 지나치게 민감할 필요는 없지만 어느 정도의 시대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신선한 음악 소재 및 방법은 새로운 멋과 흥미를 유발한다. 교회음악 문화의 질적 향상이 꼭 필요하다. 교회문화가 세속적  문화에 너무 뒤지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에 흥미를 잃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교회음악인의 작품들이 이류에만 머물고 있다면 신선감을 잃는 요인이 될 것이다. 바깥세상은 하루가 멀다 하고 뒤바뀌는데 우리의 통일찬송가처럼 17년을 써서 모두 익숙하게 되면  신선감이나 흥미를 잃게 될 것이다.  사실 C.C.M이 무분별하게 범람하게 된 이유 중에도 찬송가가 올바른 기능을 못하게 된 것이 한 몫을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다섯째는, 교회음악의 입장에서 볼 때, 대중음악 안에는 함정이 있다. 한국교회는 이것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드럼세트와 증폭된 마이크장치는 교회음악을 대중매체로서 활용하는 중요한 도구이다. 이 도구들은 음량과 음질의 원색적 강함 때문에 다수의 군중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가는데 있어서 강력하므로 그 점이 효과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악기는 한 인간의 영적 변화를 목표로 한다기보다는 대중들의 일체감이나 군중심리 형성, 그리고 대중자체를 상대하므로 개인적 느낌과 생각이 무시되는 단점도 있다. 더욱이 예배의 찬양인도 수단으로서 드럼세트가 활용되고,  증폭된 마이크가 주는 악기의 그룹적 큰소리와 함께 감성의 틀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기도 한다. 비이성적인 사람에게는 이것이 군중심리로 작용하기도 하고 착각 현상을 경험하게 되기도 한다. 이성적인 사람에게는 반감을 가지게 되거나 냉소하게 된다. 원색적 음악행위가 계속될 때 나타나는 현상들은 극단적인 두 부류를 낳게 할 것이다.
드럼세트는 힘이 강조 될 수밖에 없다 포르테가 많을 수 밖에 없다. 피아노(p)가 감각적이고 소극적 면모라면 포르테(f)는 외향적 성향이 있다. 그래서 포르테는 더 흥분을 조장한다. 음악은 중성이므로 음악기법은 같아도 가사만 복음적일 때 교회음악이 가능하다는 말은 음악언어의 질서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우리들이 색을 선택할 때 원색에 대한 추구는 다른 색에 비하여 논리적으로 판단하기보다 좋아하는 경향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좋아하고 싫어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게 된다. 따라서 한쪽에 치우치기 쉽기도 하다. 문제점이나 무리한 점을 지적하여도 좋아하는 경향이 우세하여서 영향을 줄 수가 없다. 교회음악에 있어서는 화성과 악기의 사용을 이에 비길 수 있는데, 색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음악에서의 원색적 사용은 원색적 사용은 도덕적 불균형, 판단 기준의 마비를 가져오게 된다고 생각된다.

여섯 번째는, 잘못된 인식에 관한 것들인데,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메시지적 내용이 빈곤하거나 메시지 선포를 위한 환경 조성을 위하여 음악을 앞세우는 목회자도 있다. 즉 약 30분 찬양을 한 후 설교를 하면 설교가 더욱 잘 먹힌다는 식이다. 이것을 어떤 목회자는 미리 불땐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교회음악이 어떤 목적을 위하여 도구가 되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교회음악 본래의 목적-찬양, 교육, 메시지적 기능-에서 많이 이탈되었다는 느낌이다.
또 어떤 이들은 음악을 의식화의 도구로 사용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투쟁하고 농성하는 사람들이 사람을 모으기 위하여 또는 의식화를 위하여 음악을 사용하는데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사람들이 저들이 사용하는 방법 이상의 의식화 형태의 방법을 쓴다. 일부 부흥사들은 감성을 자극하고 분위기를 연출하여 회개시키는 도구로 사용하려한다.
찬양하면 병을 고친다는 말이 어느 정도는 사실이지만 그것이 회중들을 위한 집회에서 또는 일반화하기에는 많은 검토와 준비가 필요하다. 음악이 기복적 신앙의 도구로 쓰여진다면 거기에는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의 경배와 찬양 흐름을 보면서 유행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각 교회의 실정에 맞게 잘 계획된 프로그램을 가지고 훈련된 교회음악지도자를 리더로 하여 운영하는 것이라면 바람직하지만 그러한 종합적 계획없이 일을 시작한다면 유행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교회음악이 대중적 음악행위로부터 어느 정도의 영향은 받겠지만, 주류를 이루어야할 정통적 교회음악을 이끌어 가는 어떤 모형은 따로 있다. 왜냐하면 음량이 커서 시끄럽고 정신없는 음악, 또는 악기의 연주나 편성이 비기능적이며, 기호적 태도로 음악을 부른다면 그것을 정상적 음악행위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술성이 결여되어있는 목적성이 강조된 어떤 음악 형태는 일시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바른 시각과 방향이 필요하다.
  한걸음 더 나아가 한국교회는 기독교 사상이 직접적으로  표현된 실용음악 뿐아니라, 기독교적 사상이 간접적으로 표현된 다양한  교회음악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순박하면서도 다양하고 의미있는 노래를 열정적으로 부르기 위하여 교회음악 창작인들은  항상 교회음악을 교회음악답게 가꾸고 방향을 설정하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장르를 기획하고 연출해야한다.  창작이 그 저변을 이루고 번성해야 교회음악이 근본적으로 발전한다.
이러한 일을 감당하기 위하여 한국교회는 우선적으로 예배음악에 대한 전문성을 존중하고 가꾸어가야 하며 다이내믹한 교회음악 문화를 창출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